이영훈 파문의 단상 天安門

이영훈의 발언은 단지 억압적인 국가권력만이 성노예를 만들어낸것은 아니었으며, 민간의 포주들이 개입해있다는것이었다. 일본뿐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것. 나는 이영훈의 발언의 맥락이 왜곡되었다는 것과 그말 자체에는 동의한다. 문제는 발언의 근저에 자리한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 '제3세계에서 자본주의는 있을 수 없다'는 종속이론이 60년대 신흥공업국의 등장에 의해 실천적 파산선고를 받은 이후(한강의 기적!), 경제사학계에서는 식민지화가 자본주의화를 촉진한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대두된다. 이는 외양에 탈민족주의를 내세운다. 식민화에 따른 근대화. 이건 그 이야기만 놓고보면 결코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자본주의화에 따른 생산력 팽창은 당연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종속이론은 파산했다(물론 IMF이후 다시 논의되고 있기는 한것 같지만).

실제로 철도가 깔리고, 공장이 세워졌으며, 생산량이 증식되었으니까. 그렇다면 수탈은? 일제 강점기 내내 '수탈'이라는 형태로 잉여의 증발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유혈적인 경제수탈(공출!)은 세 국면으로 나누어볼 수있는 일제 통치기간 중 말기, 즉 전쟁준비기에 한하여 이루어졌다. 자본주의의 토대는 식민지 지배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식민지 근대화론은 옳은가? 문제는 철도를 깔고 공장을 짓는다고 자본주의가 되는게 아니라는 것에 있다. 이 이론은 자본주의의 본질이 임노동관계 기초한 착취에 있음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식민지적 상황에서라면 그 과정은 엄청나게 유혈적이 된다. 그러나 이들에게 생산력의 팽창은 모든 진보적인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한 방향타이다. 그렇기에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력을 팽창시켜준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 역시 나쁘다고 볼 수 없으며, 도덕적 선악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식민지 근대화의 유혈적 도입과정은 그냥 '시민단체 차원에서 규명하면 되는 것'이 되어린다. 이 이론은 조선의 자본주의화 그 자체가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역사적 과정의 일부였음을 애써 눈감는다. 식민지의 자본주의화 자체, 즉 자본주의의 물적 토대를 건설하는 과정, 즉 자본의 축적과 임노동자의 축적과정 자체가 폭력적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종국에는 전쟁을 위한 것이었음을, 그렇기에 일제말기는 유혈적 수탈이 지배적이었음을 보지 못한다.

토지조사사업으로 수많은 농민이 생산수단을 상실했으며,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였던 치안유지법은 현 시기 국가보안법의 모태이다. 1910년대부터 1919년 3/1 운동까지의 무단 통치기를 관통했던 헌병경찰제가 현재 가능한 것은, '계엄'시기이다. 한 마디로 식민지배 초기는 10년간의 계엄시기였던 것이다. 통치기구였던 총독부는 입법권/사법권/행정권 모두를 손아귀에 가지고 있는 체제였으며, 이는 '총독'이라는 존재가 한반도에 존재했던 어떤 군주보다 막강한 전제군주였다는 것을 의미한다(유신체제의 모델이 총독부에 있다는 설명 역시 존재한다). 민중에 대한 그만한 정치적 강제체제 없이는 식민지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산력팽창이 제1차적인 선이기에, 이들의 논의는 결국 모든 맥락을 거두절미 한 상태에서, 생산력 팽창을 이룩해낸 체제에 대한 승인으로 경도될 수 밖에 없다. 이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부이자, 박정희에 대한 승인으로 돌아선 한때의 반체제 인사, 안병직의 삶의 궤적에서 쉽게 확인된다.

문제는 식민지 근대화론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하는 논리에서도 발견된다. 무수한 대중이 민족주의에 근거해서 민족주의를 부정하는 이영훈을 비판하지만, 광신적 민족주의, '조선후기 자본주의 맹아론'따위에 근거해서 이영훈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과 동일한 생산력주의의 맥락위에 서있다.
그래서 그들은 민족국가의 생산력 팽창을 위해서라면 당장이라도 미국을 위한 파병을 주장한다. 그들은 '대동아 전쟁'의 추악함은 강조하지만,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제국주의 경쟁의 필연적 귀결이었던 2차대전의 본질을,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의 추악함은 보지못한다. 민족주의건, 탈민족주의이건 생산력주의에 기반한 논리는 결국 지배계급과 자본의 논리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생산력의 팽창은 착취를 전제로한다는 것을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난 친일파 청산에 찬성하지만, 그 논리의 적용은 '미제'에 부역하는 자들까지로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한일합방을 해야한다고 했던 자들과,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미동맹을 사수해야 한다고 왜치는 자들 사이에는 어떤 논리적 차이도 없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얼마나 피억압자의 헤게모니 하에서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느냐에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덧글

  • 강희대제 2011/05/16 10:18 # 답글

    (1) "이 이론은 조선의 자본주의화 그 자체가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역사적 과정의 일부였음을 애써 눈감는다."
    ->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6827 참고바랍니다.


    (2) "토지조사사업으로 수많은 농민이 생산수단을 상실했으며"
    -> 이것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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